아티스트가 명성을 얻어 컬렉터가 되는 경우는 많지만 반대의 경우는 흔치 않다. 아니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예술과 비즈니스의 세계는 엄연히 다른 물이다. 그런데 이 남자는 온도가 현격히 다른 두 바다를 수시로 넘나든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세 가지 세계다. 하나는 사업가이자 컬렉터로서, 또 하나는 갤러리 대표로서, 마지막은 작가로서다.
천안 신세계백화점과 갤러리, 복합문화공간을 운영하고 있는 김창일 아라리오 회장(예명 씨킴ㆍ62)이다.
천안 아라리오갤러리에서 7번째 개인전을 열고 있는 그를 만나 왜 예술을 하는지 물었다.
"본능이죠. 스물여덟 살 처음으로 미술품을 샀던 것처럼…."
그는 사실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컬렉터다. 지난해에도 아트뉴스가 선정한 전 세계 파워 컬렉터 200인에
이름을 올렸다. 소장품은 7000여 점. 이 가운데 데이미언 허스트, 시그마 폴케, 트레이시 에민과 동남아
작가 작품들을 다수 소장한 것으로 유명하다.
"사업가가 그림을 그리는 것에 대해 처음에는 손가락질을 받았어요. 너무 힘들었죠. 저 스스로도 위선자가 아닐까 고민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아티스트가 되고 나서 비즈니스맨이나 컬렉터도 하나의 퍼포먼스가 아닐까 생각하게 됐지요.
어느 순간 모든 게 예술로 수렴되면서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그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1999년, 그의 나이 40대 후반이었다. 쉰줄에 접어든 2002년 첫 개인전부터 `씨킴(CI KIM)`이라는 예명을 썼으니 이제 데뷔한 지 10여 년이 지난 셈이다.
처음에는 주변에서 "얼마나 가겠느냐"며 수군거렸지만 이제는 "나도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부러워한다고 한다.
그의 예술세계는 팝아트 선상에 놓여 있다. 제주도에서 주워 온 나무와 밧줄, 폐품들에 온기를 불어넣는가 하면
눈이 세 개, 입이 세 개인 자화상 시리즈, 에드거 앨런 포를 그린 캔버스에 토마토를 던져 부패되는 과정을
그린 캔버스 작업까지 다양하다.
"아트는 인내심이 중요하지만 비즈니스 세계는 즉각적인 결과물을 원하죠. 그런데 제가 이 둘을 해보니
오늘날 최고경영자(CEO)들은 아트나 디자인을 모르면 점점 경영이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수천 점의 작품을 사본 그지만 자신의 작품은 몇 점을 팔았을까.
"미술관에서는 몇 점 사갔지만 개인들에게는 팔지 않습니다. 아직은 좀…." 머리를 긁적이며 그는 멋쩍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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