展示가 끝나면… 이 그림은 없어집니다
2013-10-09 Period 조선일보 2013. 10. 01
   

展示가 끝나면… 이 그림은 없어집니다
곽아람 기자

2013. 10 .01

사회 비판적 그래피티로 유명… 별칭 '인도네시아의 바스키아'
곧 지워질 壁畵 그리는 이유? 내 작품이 영원히 남기보단 사람들 기억에 남길 바라니까


이 전시의 대표작은 전시가 끝나고 나면 지워져 사라질 벽화(壁畵)다. 인도네시아 작가 에코 누그로호(Nugroho·36)는 서울 청담동 아라리오 갤러리 전시장 벽을 수성(水性) 안료를 사용한 흑백(黑白)의 그림으로 가득 채웠다. 산, 건물, 동식물이 뒤엉킨 풍경 속에서 검정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인물이 무표정한 눈빛으로 관객을 바라본다. 이슬람교 여성이 쓰는 '히잡'으로 얼굴을 가린 이 인물은 누그로호 작품의 트레이드마크. 거대한 사회구조 속에서 획일화된 개인을 상징한다. 서울의 인상을 형상화한 'Landscape'(풍경)다.

누그로호는 세계 미술계의 대표적 유망주다.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인도네시아관 대표작가 중 한 명이며, 지난 6월엔 미국의 유력 미술시장 전문잡지 '아트+옥션' 선정 50세 이하 유망 작가 50명 안에 이름을 올려 작품성과 시장성을 함께 인정받았다.

별칭은 '인도네시아의 바스키아'. 그는 1997년부터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 길거리에 개성을 통제하는 사회 분위기를 비판하는 그래피티(graffiti) 작업을 선보이며 이름을 얻었다. 뉴욕 뒷골목 벽에 낙서 그림을 그렸던 미국 작가 장 미셸 바스키아(Basquiat·1960~ 1988)와 유사한 궤적이다.


 지난 27일 서울 청담동 아라리오갤러리에서 벽화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는 에코 누그로호.

그는“대상의 요점만 표현하는 전통 염색 '바틱'을 작품에 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허영한 기자

 

곧 지워질 벽화 작업에 몰두하는 건 젊은 혈기 때문이 아니다. 누그로호는 "오늘 태어나고 다음 날 죽어버리는 벽화가 인간의 삶과 닮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 작품이 영원히 남기보다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오래도록 기억되길 바란다"고 했다.

만화(cartoon)처럼 대상의 핵심만을 간략히 표현하는 것이 누그로호의 장기. "어린 시절 꿈이 코미디언이었는데 말보다 그림으로 남들을 웃기는 재주가 있어 사춘기 때부터 열심히 만화를 그렸다"고 했다.

제3세계 미술가들이 대개 그렇듯, 누그로호 역시 지독히도 가난했다. 담배 배달부였던 아버지는 "도저히 너를 공부시킬 수 없다"고 했다.

누그로호는 공모전 상금, 기념품 행상을 하며 번 돈으로 학교를 마쳤다. 그리고 100호 그림이 3000만~4000만원을 호가하는 유망주로 성장했다.

2030년 국내총생산(GDP)이 영국을 능가할 것으로 점쳐지는 인도네시아의 경제 성장, 자국(自國) 컬렉터들의 아낌없는 투자 덕이다.

누그로호는 "뛰어난 작가가 인정받는 건 기쁜 일이다. 그러나 예술가를 키우는 사회 시스템 덕이 아니라 오직 '돈' 때문이라는 것은 가슴 아프다"면서 씩 웃었다. 전시는 1일부터 11월 3일까지. 벽화 작업뿐 아니라 회화·조각·자수 작업 16점도 나온다. (02)541-5701

 

기사 원문보기